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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에 대한 후세의 해석

해당 내용은 나무위키에 장영실 부분을 발췌해서 가져온 자료입니다.

내용

세종대를 뛰어 넘어 한국사를 대표하는 과학기술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정작 학계에서의 평가는 그렇게 높지 않다. 특히 과학사학계 일각에서는 오히려, 장영실에 대한 그간의 평가가 지나친 영웅화가 아닌가하는 의견이 상당수 제시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과학자라고 할 수 없다. 훌륭한 발명품을 만들어냈지만, 그것을 둘러싼 원리를 탐구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으며, 발명품과 관련된 사상적 논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뛰어난 기술자는 될지언정 과학자라는 호칭은 적절하지 않다.

과학사학자들은 세종 대의 과학을 논의할 때, 장영실보다는 오히려 이천, 이순지, 김담, 정인지와 같은 인물에 더 주목한다. 천문학을 필두로, 다양한 자연 영역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한 인물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천 같은 경우, 혼천의나 앙부일구부터 각종 화약무기나 악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각종 기구를 만들어내는 총책임자였고 장영실 역시 그의 아래에서 제작을 도운 인물 중 하나였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